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지역이야기 - 고창 1 고창읍성

by rldr rldr 2021. 4. 21.

고창읍성은 모양성이라고도 부르며 고창군 남쪽 장대봉(108m)에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를 최대로 이용하여 축조한 성곽이다. 

고창읍성 전경
길이 1684m의 성벽 위에 서면, 읍내와 멀리 보이는 산하가 눈앞에 훤하다. 성벽을 사이에 두고 수백 년 전후의 두 세계가 동시에 존재한다. 완벽하게 옛 모습을 간직한 성안은 어느 고궁보다 아름답다. 성벽은 걸어서 한 바퀴 돌기에 제격이다. 이 모양성은 산책코스로 그만이다.
윤달이면 한복 차림의 부녀자들이 머리에 돌을 이고 줄지어 성벽을 도는 ‘답성놀이’를 한다. 한 바퀴 돌면 다리 병이
고창읍성 성벽 일부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 승천한다는 전설이 전한다.
1453년(단종 1)에 일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성이다. 백제 때 고창지역이 모량부리라고 불렸던 까닭에 모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성벽은 외면만 돌로 쌓고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다져서 쌓았다. 성의 높이가 4∼6m, 면적은 50,172평으로 동, 서, 북문 3문이 있다.   3개소의 옹성, 6개소의 치성을 비롯하여 성 밖의 해자 등 전락적인 요충 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헌, 객사 등 22동의 관아건물 등이 있었으나 전화로 소진되고 성곽과 공북루만 남아 있던 것을 1976년부터 옛 모습대로 복원하고 있다.

고창읍성 성벽의 축성담당 지역 표석
읍성 축성에 사용된 석재는 거의 자연석인데 어느 절에서 나온 듯한  석재들을 깨뜨려 쓴 것도 가끔 끼여 있다. 특히 북문인 공북루의 주춧돌 높이는 제각각이라서 1m쯤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아예 땅에 깔려 기둥이 바닥까지 내려온 것도 있어 이채롭다.
성을 쌓기 위한 그 많은 석재들은 표석에 김제, 정읍, 진안, 장성, 고부, 용담, 영광, 무장, 능주 등의 지명이 새겨져 있어 구역제로 맡아서 축성에 동원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담양, 함평, 나주, 제주 주민까지 동원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성내에는 관아만 있고 주민들은 성 밖에서 생활하다가 유사시에 성안으로 들어와 함께 싸우며 살 수 있도록 4개의 우물과 2개의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성이 쌓여진 데에는 독특한 전설이 있다. 당시 남자들과 여자들이 각각 성을 쌓는 내기를 했는데 여자들의 힘을 무시한 남자들이 내기에 져서 망신을 당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보면 어쩐지 다른 성곽과는 달리 아기자기한 형태가 부각되어 보이기도 한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해서 쌓았는데도 아귀를 잘 맞춰서 보기에도 좋을 뿐 아니라 전국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튼튼한 성이다. 내부시설로는 성문과 척화비, 동헌 등이 있다.
이 성은 최근에는 ‘왕의 남자’라는 영화를 촬영하여 주목받았다. 연산군과 중신들이 짐승으로 분장한 광대들을 목표물로 하고, 모의사냥을 하던 울창한 대숲이 바로 고창읍성이다. 실제로 가보면 극 중의 급박하고 긴장된 느낌과는 또 다르게 푸른 숲과 잘 보존된 성곽이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다.
특히 봄이면 성벽을 따라서 철쭉과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성 둘레를 감싸고 있어 영화보다 더 영화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성 둘레는 경사가 심하지 않아서 꽃향기를 맡으면서 산책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고창읍성 북문 옹성
더불어 성곽 안에는 울창한 소나무와 대나무 숲 사이로 동헌, 객사 등의 유적이 복원돼 있는데, 짧은 시간이나마 여유로운 걸음으로 성안을 거닐다 보면 또 다른 시간 속을 맴도는 듯, 돌담 너머 또 다른 세상에 들어선 듯하다.
성문은 정문인 공북루(북문)와 등양루(동문)와 진서루(서문) 등
고창읍성 동헌
3개가 있다. 성문 앞에는 적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옹성을 둘러쌓고 그 위에 여장을 만들었다. 고창읍성은 특이하게도 남문이 없다. 남문이 없는 이유는 풍수지리상 남문이 적을 이롭게 한다 하여 만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고창읍성 내아
고창읍성은 입암산성, 나주진관과 더불어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요충지였다. 호남 내륙에서 한양에 갈 때는 노령산맥의 갈재를 넘어야 했다. 그런데 갈재는 험준하고 방장산과 입암산을 끼고 있어 도적떼들이 한양으로 가는 행인을 괴롭히고 봉변을 주는 곳이었다. 
이곳을 지키는 입암산성과 법성포와 고창, 영광 지역은 너무 멀어, 입암산성의 힘이 크게 미치지 못했다. 고창읍성은 이곳을 지키기 위해 축성되었고, 서해안 일대를 지키는 전초기지로 호남 내륙을 왜구의 노략질로부터 지켜왔다.

댓글0